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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의 플랫폼] 어포던스의 집합공간 '플랫폼'

전현우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2/17 [17:05]

[전현우의 플랫폼] 어포던스의 집합공간 '플랫폼'

전현우 객원기자 | 입력 : 2021/02/17 [17:05]

= 각기 다른 사정과 목표를 가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단 한 편의 열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그리고 이런 풍경이 매일같이, 거대 도시와 광역망, 전국망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이 사실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이 사실을 가능하게 만든 제도·역사·지리·경제·공학을 되짚어 보는 것. 또한 철도가 이들에게 다시 돌려준 것들을 살펴보는 것. 바로 <플랫폼>의 목적이다 =

 

▲ 눈 내리는 인천역 플랫폼 (2021년 1월 6일 밤 촬영)  © 전현우

 

[철도경제=전현우 객원기자/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플랫폼은 평평하다. 평평하다는 말은 이 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높이에 있다는 뜻이다. 

 

때로 천 명이 넘는, 그리고 신체적·경제적·사회적으로 모두 다른 처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높이에서 열차를 기다린다. 이들 모두의 촉각은 언제 내가 탈 열차가 이 플랫폼에 도착할 것인지에 쏠려 있다. 

 

플랫폼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지향할 수 있도록 돕는 목적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 플랫폼과 그 주변은 수많은 약속들, 그리고 어포던스(affordance, 행동유도성)들로 이뤄진 체계로 규율된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언제 올 것인지에 대한 약속. 기다리는 동안 편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공용 의자. 눈 앞에 있지만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예컨대 본선)이 있다는 약속. 그리고 사람들이 본선으로 뛰어들지 않도록 유도하는 플랫폼의 높이.

 

바로 이 때문에 “플랫폼”은 하나의 은유로서 널리 쓰인다. 

 

“플랫폼” 노동, “플랫폼” 산업, “플랫폼” 조직 등 철도를 벗어난 “플랫폼”은 특히, 온라인을 통해 성립한 하나의 시장 구조를 지시하는 말로 자리잡는다. 

 

이 구조의 시장은 승객에 해당하는 일군의 소비자, 그리고 열차 운행사에 해당하는 일군의 공급자를 서로 만나게 한다는 점에서 “플랫폼”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마치 철도역의 플랫폼처럼, 이런 양면시장(two-sided market)의 참여자들은 상대편의 참여자가 많을수록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열차가 많을수록, 또는 배달을 시킬 수 있는 식당이 많을수록, 플랫폼의 승객들은 다양하고 편안하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한편 플랫폼으로 들어온 승객이 많을수록, 또는 접속자가 많을수록, 서비스 공급자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양면시장 또는 플랫폼 사이에 있는 이런 유사성은 사람들을 플랫폼으로 모여들게 하는 힘이나 사람들의 욕망을 아주 좁은 공간 속에 모아들이는 방법에 주목하게 만든다. 플랫폼은 사람들의 욕망을 통일시키지 않고, 그럴만한 힘도 없다. 

 

다만, 사람들의 흐름. 그것이 웹서핑의 흐름이든, 실제 물리적 흐름이든 근처에 플랫폼을 가져다 놓고 이용할 만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기를 기다릴 뿐이다.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만큼, 하나의 플랫폼으로 모여들기를 기대할만한 사람들도 드물다. 

 

그렇게 플랫폼 그 자체에 대한 상념이 깊어져 갈 때, 때맞춰 열차가 도착한다. 그대로 두었으면 어디로 갈 지 몰랐을 생각의 타래를 끊고, 여기 실재가 있다고, 그리고 당신이 플랫폼에 올라온 이유를 다시 생각하라고, 공간을 찢고 들어오는 열차가 말한다. 일단, 열차에 오르자.

 


양면시장에 관한 연구로 다음을 참조했다. “Jean Tirole: Market Power and Regulation”, the Economic Sciences Prize Committee of 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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