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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의 플랫폼] 줄서기라는 협업 "삶을 공유하는 감각들"

전현우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3/04 [09:12]

[전현우의 플랫폼] 줄서기라는 협업 "삶을 공유하는 감각들"

전현우 객원기자 | 입력 : 2021/03/04 [09:12]

= 각기 다른 사정과 목표를 가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단 한 편의 열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그리고 이런 풍경이 매일같이, 거대 도시와 광역망, 전국망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이 사실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이 사실을 가능하게 만든 제도·역사·지리·경제·공학을 되짚어 보는 것. 또한 철도가 이들에게 다시 돌려준 것들을 살펴보는 것. 바로 <플랫폼>의 목적이다 =

 

▲ 줄을 서서 열차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 영등포역, 무궁화호(=2021.3.4 촬영)  © 철도경제

 

[철도경제=전현우 객원기자/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열차에 오르려는 당신을 맞이하는 것은,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이다.

 

열차 출입문의 양 옆으로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을 수도 있고(도시·광역철도 전동차), 출입문 앞에 무정형으로 늘어서 있을 수도 있지만(KTX, 무궁화호를 비롯한 저상홈 열차), 이런 줄은 사람이 매우 적은 역이거나 한밤중이 아닌 이상에는 열차를 타기 위한 통과 의례처럼 보인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것에 대한 질문은, 때로 상상 이상으로 답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줄을 서는 것인가? 

 

내리는 사람 때문에 들어가기 어려운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리는 사람이 모두 내리고 나서도 사람들은 줄을 선다. 

 

아마도 앉을 자리 때문에 줄을 선다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좌석이 지정되어 있는 고속열차를 탈 때도 사람들은 줄을 선다. 이들 문제 말고도, 줄 속에는 무언가가 더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줄을 서서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당신은 열차에 오르기 전에 앞 사람과 부딪치고 말 것이다. 앞뒤로든, 옆으로든 그렇다. 

 

게다가 당신은 열차에 오르기 위해 목이 좁은 지점을 통과해야만 한다. 차량 문의 폭은 한두 명 만이 동시에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므로, 문 앞에서 사람들이 몇 줄로 서 있든 이 행렬은 한·두 줄로 합쳐지게 된다. 

 

여기에 사람들의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계단까지 더해진다. 그렇다면 당신이 줄을 서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을 비롯한 주변 물체와 부딪칠 가능성, 그리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속도를 조절해야 할 필요성이라는 점이라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이처럼 속도를 조절해 줄을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 이뤄지는 일종의 협업이다. 

 

처음 철도가 개통된 지역이나 도시라면 줄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열차에 오르는 사람도 나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 덕에 자신의 갈 길이 막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리고 이렇게 꼬이는 승객 동선 덕에 늘어나는 승하차 시간으로 생겨나는 열차 지연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업자들이 승객들에게 캠페인을 벌이면서, 또는 가끔씩 일어나는 압사 사고에 대한 경험이나 보도 덕에, 사람들은 속도를 줄인다. 

 

줄이 무너지면, 모두를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옴짝달싹할 수 없이 인파 속에 갇혀 버리는 결과 뿐이다. 

 

이런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른 많은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인 언어는 명백히 아니다. 

 

필요한 것은,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에 대한 심리적 감각, 그리고 걷다가 앞 사람의 행동 때문에 정지할 때까지 필요한 힘과 거리에 대한 물리적 감각이다. 

 

이런 감각들은, 말하자면 선천적이다. 물론 사람들 각자는 분명 삶 속에서 있었던 많은 경험에 기반해 이들 감각을 조율해 왔겠지만, 모든 사람은 타인과 접촉하고 물리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이상 이러한 감각은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의 삶의 형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각들이다. 

 

줄서기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생각보다 공유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살아있는 증거인 셈이다.

 


줄서기와 관련된 흥미로운 저술로 다음을 참조. 니시나리 가쓰히로, 『정체학』, 이현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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