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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철도 비밀노트–4화] 한반도 혈맥을 완전히 연결하다

남북열차 시험운행, 이번엔 진짜 성사될까?

양정규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4/27 [14:12]

[북한철도 비밀노트–4화] 한반도 혈맥을 완전히 연결하다

남북열차 시험운행, 이번엔 진짜 성사될까?

양정규 객원기자 | 입력 : 2021/04/27 [14:12]

(철도경제×국토매일 공동기획) = 반세기 이상 단절되어 온 남북철도를 복원하기 위해 애써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측 인사들과 만나 실무협의를 하고 실제로 진행을 맡았던 실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비화를 모아 전해드립니다. 남측과 북측이 나눴던 팽팽한 긴장감과 때론 따뜻하고도 찡했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남북철도 복원의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요! =

 

※ 본 연재기사는 온라인 '국토매일'에도 게재됩니다.

 

[철도경제=양정규 객원기자/작가] 2006년 2월부터 남북철도·도로 연결사업의 실무를 책임졌던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큰 기대를 품었던 2006년 5월 25일 행사가 하루 전날, 북측의 일방적인 취소 통보로 무산된 일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이 멍했어요. 북한의 협상 파트너들 얼굴도 보기 싫어질 정도였죠. 하지만 곧바로 더욱 철저히 준비하자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종 점검차 2006년 5월 23일경 개성역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전혀 취소될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었다고 한다. 

 

▲ 2006년 5월 25일로 예정된 행사를 이틀 앞두고 남측의 총괄 실무 책임자가 최종점검차 개성역 현장을 방문하였을 때 조차 취소될 기미는 전혀 없어 보였다고 한다.   © 철도경제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도 아랑곳없이 모든 철도 실무자들이 행사준비로 여념이 없었고 당시 북한 철도성 대협력국장이었던 박정성 남북회담 대표 책임자까지 역에 나와 마무리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조만간 쏠지도 모른다는 설왕설래가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열심인 모습을 보고 나니 더욱 믿음이 생겨 상부에도 이상 없을 것 같다며 보고까지 마친 터였다. 

 

그는 누구보다 허망한 마음이 컸다. 당에서 내린 결정이면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북측 실무자들의 허탈함 또한 대단히 컸을 거라 짐작된다.

 

서로는 남북관계와 세계정세가 좋아지면 언제든 또다시 기회가 생길거라는 희망을 품었다고 한다. 

 

손 놓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남북철도 시험운행의 밑그림을 착실히 그려나갔다.

 

사실 궤도 연결은 모두 완료되어 시험운행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후 남과 북이 상시로 철도를 운행할 수 있으려면 해결해야 할 제반 사항이 여럿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 철도 침목은 대체로 규격에 맞게 가공된 목재를 사용해야 하는데 북한의 철도 침목의 경우 제각각 다른 규격의 통나무 등이 사용되어 있어서 규격화가 필요했고 부식되거나 마모된 곳에 대한 보완이 필요했다.  © 철도경제

▲ 북측 구간의 전차선 및 전기기관차 역시 배수 불량 등으로 인한 보수가 필요했다.  © 철도경제

 

그러던 중 2006년 6월 3일~6일까지 제12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열려 경공업자재 지원문제와 열차시험운행을 연계하기로 합의가 됐다.

 

도중에 2006년 10월경 북한이 도발한 핵실험으로 인해 철도 자재 제공과 기술지원이 잠정 중단되기도 했지만 남과 북은 공식·비공식적으로 종종 만나 철도 관련 업무를 협의하고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남북간 합의 사항을 집행하는 사업은 주로 통일부가 했고 국토부가 지원하여 철도시설공단이 공사를 맡았다. 남측의 총괄 책임자는 남과 북을 오가며 철도 실무자들을 닦달했다고 한다.

 

불안한 국내외정세와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이뤄놓은 결과물들이 또 물거품이 될 것 같은 위기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북측 철도 실무자들 또한 이러한 위기감에 공감했고 남북 열차운행을 반드시 성사시키고 싶어 했다. 그들은 열성도 있었고 전문성도 모두 갖춘 사람들이었다. 

 

우선 남북철도 운행에 대비한 철도역 신축과 북측의 시설 중 낙후된 역사에 대한 보수공사가 필요해 보였다. 북측엔 검수고나 차량 부대시설 등이 구비된 현대화된 역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북측의 경의선에는 판문역과 손하역을 신축하기로 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 경의선의 판문역과 손하역 등은 신축하기로 하고 개성역은 리모델링을 결정했다. 개성역은 특히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방문했던 역이었기에 북측의 자부심이 대단했기에 다른 역보다 더 규모가 크고 현대식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공사를 진행했다.  © 철도경제

 

그러던 중 북측이 남측에게 개성역을 다른 역보다 더욱 크고 현대적인 역으로 리모델링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개성역은 원래 예쁘고 아담한 역이었는데 새로운 지어질 역사보다 개성역이 더 돋보이길 원했다.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방문했던 역이라는 점에서 개성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북측의 요청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 개성역에 공을 들였다. 새로 지어진 다른 역보다 리모델링을 택한 개성역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 남북이 철도연결 구간으로 결정하고 시험운행을 잘 마치기 위해 경의선의 경우 MLD를 지나 개성역까지 가기 전 ‘판문역’과 ‘손하역’을 신축하는 공사를 추진했다.  © 철도경제

 

자재와 장비 등을 남측이 북측에게 차관형식으로 제공해 역사 공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공사 기간이 오래 걸렸다.

 

북측은 도로보다 철도가 주된 교통로인 반면, 남측에서 옮겨가야 할 자재와 장비들은 철도를 이용할 수 없어 모두 육로를 통해 차량으로 실어날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남북철도 관련 공사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돼 갔다. 하지만 다시 남북열차 시험운행이 성사되려면 무엇보다 군사보장 문제가 관건이었다. 실무자들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하더라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성사되긴 어려웠다. 

 

이 같은 고민은 2007년 4월 18일~22일까지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렸던 제13차 경제협력추진회에서 해결된다.

 

이 회의에서 경의선․동해선의 남북 철도연결구간에서의 열차시험운행을 5월 17일 실시하며 이를 위해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지도록 적극 협력하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된 합의문이 발표된 것이다. 

 

남과 북의 철도 실무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취소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진일보한 합의를 이끌어냈기 때문이었다.   

 

이후 남과 북은 4월과 5월 두 차례 개성의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에서 남북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을 갖고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에 대한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사준비에 돌입한다. 

 

▲ 개성까지 가는 동해선의 북측 구간 중 감호역과 금강산역 등에 대한 역사 신축 공사 및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었다. (上) 감호역 전경, (下) 금강산역사 리모델링 시공 전경.  © 철도경제

 

먼저 경의선은 남측이 주도하고 동해선은 북측이 주도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전기, 통신 등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기관차는 남북 동일하게 디젤기관차를 운행하기로 했는데 디젤기관차에 객차 4량, 발전차 1량을 편성했다.  

 

운행구간은 경의선(26.8km)의 경우 남한인 문산역에서 출발하여 개성역까지 갔다가 다시 문산역으로 복귀(문산→임진강→도라산→(MDL)→판문→손하→개성→문산), 동해선(25.5km)의 경우 북한의 금강산역에서 출발하여 제진역까지 왔다가 다시 금강산역으로 복귀(금강산→삼일포→감호→(MDL)→ 제진)하기로 했다.  

 

▲ 동해선의 북측구간인 금강산 구선봉 통문부터 감호역 사이의 선로를 점검하며 행여나 낙석의 우려가 있는 곳이나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곳을 꼼꼼히 점검하기도 했다.   © 철도경제

 

통신방식은 남북철도 분계역간 폐색전화와 수신호를 병행하되 분계역간 열차 출발 5분 전후, 열차 도착 즉시 통보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운전속도는 남북관리구역내는 20~30km/h로 하되 평균 시속 40km/h이하를 준수할 것을 약속했다. 

 

행사일이 다가오자 남측구간에 대한 사전 종합 점검을 먼저 실시했다. 경의선의 우리측 구간인 도라산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약 1.8km과 동해선 남측구간인 제진역~군사분계선(7.0Km)에 대한 것이었는데 열차운행, 차량, 시설, 전기분야 등 철도운영의 각 분야에서 50여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 경의선은 남측이, 동해선은 북측이 주도하여 진행하기로 했으나 전기, 통신 등의 문제는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上) 공사용 임시건널목 (下) 신호케이블 포설용 맨홀 및 트라후.  © 철도경제

 

점검반은 도보로 이동하면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점검하는 것은 물론 검측 전용장비인 궤도검측차에 의한 선로검측도 실시했다. 발견된 문제점에 대한 보강작업 함께 진행하면서 절차상 순조로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의 1년 동안 방치됐던 제진역에 모처럼 우렁찬 경적소리가 울려퍼졌다. 시운전에 들어간 열차가 제진역에서 금강통문을 거쳐 군사분계선까지 7㎞ 구간을 3회 왕복하며 실제 운행에 대비했던 것이다.

 

동해선은 북한에서 주도하기로 한 행사이긴 하지만 행사의 안전과 성공적인 진행을 위해 시설공단 전문인력들도 궤도의 이상 유무와 전력가동 상황, 신호·통신 분야 등에 대해 실제 운행과 동일하게 확인·점검 작업을 벌였다.

 

열차 시험운행을 사흘 앞둔 날, 북한 역시 철로 보수 바쁜 북한 근로자들의 모습을 공개했다. 북측 출발역인 금강산청년역에서 보수 및 점검 작업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 뒤로 건설 중인 이산가족 상설면회소가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 들뜨게 했다. 

 

경의선은 우리 쪽에서 주도해야 할 행사였기 때문에 더욱 공을 들여 착실히 준비했다. 철도연결사업은 남북의 여객과 화물 등의 통행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통관, 출입국 관리, 검역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시설 또한 필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도라산역에 출입국관리시설(CIQ)을 설치하고 시험행사 당일인 5월 17일 공식적으로 오픈할 계획도 세웠다. 

 

▲ 성공적인 축제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 전 행사장 앞쪽에는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 이라고 쓰인 간판이 설치된 무대가 들어서는 등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었다.  © 철도경제

 

그런데 그즈음 또 문제가 생겼다. 남북은 당초 열차당 100명씩의 인원이 탑승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북측이 갑자기 “조촐하게 행사를 치르자”며 인원을 줄이자고 요구해온 것이다.

 

또다시 불길한 기운 드리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만은 무산시킬 수 없다는 강한 의지로 개성에서 밤샘 협상을 벌였다. 

 

결국 탑승 인원은 남측 100명씩, 북측은 50명씩으로 합의하고 운행 시각은 17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 까지 경의선과 동해선에서 동시에 시험운행 행사를 진행하기로 하는 등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세부계획을 담은 합의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남북은 이후 탑승자 명단을 교환하고 철도통신도 연결했다. 분계역 사이를 유무선으로 연결해 열차의 출발과 도착 등의 관련 사항을 직통 전화 등으로 상호 통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양측 분계역인 도라산역-판문역, 제진역-감호역 사이의 송수신도 마쳤다.

 

▲ 세계의 이목이 집중 될 중요한 행사인 만큼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행사가 진행 될 선로에 폭발물 탐지견까지 동원해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도 했다.  © 철도경제

 

막판 진통을 겪긴 했지만 남북철도 열차 시험운행을 하루 앞둔 전날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특히 경의선의 첫 출발역인 문산역은 축제 분위기였다. 시험운행에 사용될 열차의 내부를 공개하고 함께 탑승할 승무원들도 안전운행을 다짐했다.

 

폭발물 탐지견이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한 선로 탐지를 하기도 했다. 시험운행에 대비한 예행연습도 가졌는데 일단 문산역에서 도라산역까지 달렸으며 탑승자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역 주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조금 늦은 감도 있지만 결국 진행이 된다니 다행스럽고 환영하며 앞으로 큰 발전을 위해 뭔가 이루어지길 바랐다. 행사장 앞쪽에는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 이라고 쓰인 간판이 설치된 무대가 들어서는 등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었다. 

 

▲ 행사를 하루 앞둔 문산역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간간히 게릴라성 소나기까지 쏟아져내리는 등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았다. 우천시에도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는 정부 방침에 대한 보도가 있었지만 반세기 이상을 기다려온 역사적인 날이니만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모두가 흐린 하늘만 바라보았다.  © 철도경제

 

그러나 날씨가 좋지 않았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고 간간히 게릴라성 소나기까지 쏟아져 내렸다. 다음날 행사가 걱정스러워지는 상황이었다. 

 

도로 주변에 설치된 한반도기와 환영 깃발들이 날이 개길 기다리며 나부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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