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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의 플랫폼] 이상한 채권 Ⅱ, 왜 도시철도채권은 살아남았나

전현우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4/29 [09:00]

[전현우의 플랫폼] 이상한 채권 Ⅱ, 왜 도시철도채권은 살아남았나

전현우 객원기자 | 입력 : 2021/04/29 [09:00]

= 각기 다른 사정과 목표를 가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단 한 편의 열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그리고 이런 풍경이 매일같이, 거대 도시와 광역망, 전국망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이 사실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이 사실을 가능하게 만든 제도·역사·지리·경제·공학을 되짚어 보는 것. 또한 철도가 이들에게 다시 돌려준 것들을 살펴보는 것. 바로 <플랫폼>의 목적이다 =

 

[철도경제=전현우 객원기자/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이 이상한 채권, 도시철도채권의 탄생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플랫폼 5편의 '그림 2'로 돌아가 보자. 

 

1979년 당시 재정당국이 도시철도채권 강제 매입이라는 비상 조치를 필요로 했던 이유를 짚어보려면 2호선, 그리고 3, 4호선의 건설에 대규모 외자가 투입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외국 차관은 2기 지하철에서도 계속해서 활용되었다. 

 

서울 3, 4호선과 동시에 건설된 부산 1호선의 경우에도 자금의 30%를 엔화채권으로 조달했다는 보도를 확인할 수 있다. (기타 채권은 정부가 지자체에게 제공하는 저리의 융자가 대부분이었다.) 

 

외자는 환율의 변화라는 위험 부담을, 그리고 이자율을 통제할 수 없으며 여러 기술적 요구 사항까지 거부하기 어렵다는 부담까지 짊어지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자금이다. 

 

플랫폼 5편 그림 2 서울 도시철도망의 시기별 투자액 비율. 각 노선(사업)별 건설지를 활용했다. 단, 우이신설선은 다음을 참조. 서울 정보소통광장, 「우이~신설 지하경전철 건설(2013)」, https://opengov.seoul.go.kr/budget/400951.     © 전현우 객원기자

 

그럼에도 국내 채권시장 대신 이들이 사용된 것은 이런 위험을 감안하더라도 차관이 당시 국내 채권시장보다 철도 건설에 더 알맞은 자금이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다음 인용문은 이런 관점을 더 강하게 뒷받침한다. 

 

"지하철의 ... 운영과정의 이익금으로 건설부채를 상환하기는 극히 어렵고 차세대의 조세부담으로 상환하게 될 ... 공공시설을 확충하면서 부채성 자금을 조달함은 건설시의 불가피성과 차세대의 투자여력을 제약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 ... 가능한 장기저리의 우량 차입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금융시장에서의 조달은 가능성이 없고 공공성을 띠는 제도적 금융자금의 조달이 요구된다."(인용 1)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조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것이 건설지의 진술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제도적 금융자금” 가운데 일부가 외자였다는 점은 이미 살펴본 대로다. 외자의 부담을 줄이려면 다른 자금원도 필요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시는 정부가 제공하는 기금도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법령을 정비하여 지하철공채(1991년 이후 도시철도채권)라는 자금원까지 개발하게 된다. 

 

도시철도채권이 처음 발행된 것은 1호선 공사가 한창이던 1973년이다. 하지만 이 채권은 명목 이자율 14.5%, 실질 이자율(2년만기 6개월 선이자지급 조건)은 15.45%로, 당시의 은행 금리 12.5%보다 2.95%나 높은 수준이었다. 

 

일반에 판매된 채권이라는 점도 이후 세대 채권과 다르다. 지금과 유사한 법적 근거 하에서, 그리고 강제 소화 제도 하에서 채권이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서울 2호선 사업이 시작된 1978년의 일이다(그림 3). 

 

서울시의 조례로 먼저 시작된 강제 소화 제도는 다음 해에 제정된 “지하철도건설촉진법”과 그 시행령에도 반영되었고, 국가의 법령을 바탕으로 광역시 역시 같은 방식으로 도시철도채권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이자는 6%였으며 면세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시장 금리(무담보 콜금리)가 1998년까지 두자리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6%의 금리는 결국 도시철도를 위해 이자의 차이만큼 막대한 양의 준조세를 거두어 가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이자율은 시장 금리의 변동에 따라 2002년에는 4%, 2004년부터는 2.5%으로 떨어졌으며, 이보다 기준금리가 낮아진 2016년부터는 기준금리에 연동해 움직이는 것을 기본으로 하게 되었다. 시중 금리보다 상당히 낮은 이자율을 적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되었던 셈이다.

 

그림 3 공채 상환 공고문. 1983년 1월 20일.  © 전현우 객원기자

 

이런 낮은 이자율은 아주 중요한 함축을 가진다. 통상적인 이자율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하여 채권을 상환한다는 말은 곧 금리 차이에 숨어 과거에 빌렸던 돈의 상대 가치가 줄어들기를 기다리겠다는 말과 같다. 

 

과거에 빌린 돈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왜소해져, 채권자로서는 점점 더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전경련의 비판 초점도 바로 여기에 맞춰져 있다. 사실상의 조세처럼 운용되는 이런 제도를 통해, 차량 등록 비용이나 기타 인허가 비용을 높이는 것은 인허가 수요자들에게 명백한 부담이다. 

 

도시철도채권을 지금까지 유지시켜 온 논거는 바로 다음 조문일 것이다. 

 

"지하철도채권은 지하철도건설이 시작되는 해로부터 당해연도 지하철도운영수입금이 당해연도 지하철도운영비용(원리금상환액을 포함한다)을 최초로 초과하는 해까지 발행할 수 있다."(인용 2)

 

이 조문은 1986년, 1기 지하철이 완성된 직후에 발효된 것이다. 운영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도시철도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이 이 조문의 목적이었다. 

 

실제로 '그림 3'은 2기 지하철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던 1990년대 동안에도 건설보다는 운영을 위해 발행된 도시철도채권의 규모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나는, 발행 제한 조건에 주목해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운영수입금이 원리 상환액을 초과하는 운영비용을 넘는 경우 발행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는 아마도, 도시철도채권의 발행을 언젠가는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1986년 보도는 당시 지하철공사가 약간의 흑자를 볼 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다음회 계속)

 


* 동아일보, 부산지하철 긴 말썽터널 적자운영 잦은 고장 승객 외면, 1990.09.23.

* '인용1'은 서울특별시지하철건설본부, 지하철7호선 건설지 상권, 2002: 267쪽.

* 경향신문, 지하철공채 15억 발행, 1973.08.07.

* '인용2'는 지하철도의건설및운영에관한법률 제12조 4항(법률 제3846호, 1986.5.12., 일부개정)

* 동아일보, 지하철 객차 1량당 승객 서울 세계 최고, 198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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