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안전공단 X 철도경제신문 기획) 철도사고 발생원인을 분석해보면,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를 끊임없이 떠올려, 종사자들 간 공유해야만 철도사고를 줄일 수 있다. <그때그사건>을 통해, 이달에 발생한 철도사건 중 재조명이 필요한 중대 철도사고나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건을 되짚어 본다. 이를 계기로 당시 사고의 개요와 원인, 사고 이후 시설ㆍ제도의 개선사항 및 시사점 등을 살펴본다. / 편집자主. 

 2018년 12월 8일 오전 7시 35분경 강릉선 청량신호소에서 서울로 가던 제806 KTX-산천 열차가 탈선했다. 사진은 사고 당시 모습. / 사진=철도사고조사보고서(ARAIB/R 2019-7)
 2018년 12월 8일 오전 7시 35분경 강릉선 청량신호소에서 서울로 가던 제806 KTX-산천 열차가 탈선했다. 사진은 사고 당시 모습. / 사진=철도사고조사보고서(ARAIB/R 2019-7)

[철도경제신문=장병극 기자] 2018년 12월 8일 토요일 아침. 강릉역은 이제 막 통이 트기 시작해 아직 어둑어둑했다. 기온은 영하 8도. 그해 가장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쳤다.

이른 아침부터 강릉역엔 서울로 가려는 승객들로 북적였다. 휴가를 나온 군인, 학생, 결혼식에 참석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200여 명을 실은 제806 KTX-산천 열차는 오전 7시 30분 강릉역을 출발해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열차 승무원들도 평소처럼 여객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출발한지 5분이 지난 오전 7시 35분경. 열차는 시속 101km까지 속도를 높였고, 청량신호소 출발신호기가 '진행'으로 현시된 상태에서 '21B호 선로전환기'를 통과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열차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열차가 왼쪽으로 크게 휘어져 넘어졌다. 평온했던 객실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2004년 4월, 우리나라에서 고속열차가 운행하기 시작한 후, 가장 큰 사고가 일어난 순간이었다.

KTX-산천 10칸 중 선두 동력차가 먼저 탈선하기 시작하면서 2번째 여객칸까지 선로를 완전히 벗어나 서로 종잇장처럼 접혔다. 3번째부터 8번째 여객칸은 열차 진행방향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달리던 열차가 탈선하면서 객실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들도 다쳤다. 사고 직후 기장과 승무원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여객을 대피하는 등 안내를 했다. 하지만 2명의 승무원만으로 200여 명의 승객을 모두 챙기기엔 역부족이었다.

휴가를 나온 공군 장병들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승무원이 다른 승객을 살피는 동안, 노약자와 부상자를 구조하고 안전지대까지 대피시켰다.

관제엔 21A 선로전환기 장애로 뜨는데..."현장 가보니 이상하더라"

탈선 상황도. / 자료=철도사고조사보고서(ARAIB/R 2019-7)
탈선 상황도. / 자료=철도사고조사보고서(ARAIB/R 2019-7)

이 사고로 승객 16명이 경상을, 1명은 중상을 입었다. KTX-산천은 시속 300km급 동력집중식 고속열차로, 선ㆍ후부 동력차와 여객칸 사이를 제외하곤 모두 관절대차가 달려있다. 이 대차는 달리던 고속열차가 충돌ㆍ탈선하면서 충격으로 각 칸이 접히는 '잭나이프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번 사고에서도 관절대차가 여객칸을 서로 잡아 주면서, 선두부 동력차와 여객칸을 빼곤, 나머지 차량들은 선로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하지만 사고로 인한 차량수리비용만 215억 원에 달했다. 레일 파손 등으로 인한 시설 피해 규모도 약 7억 9000만 원이었다. 사고 이후, 강릉선을 다니는 열차 103대가 전 구간 운행을 중지했다가, 이틀이 지난 10일 새벽부터 다시 운행했다.

사고 당일 오전 7시 7분경 관제사는 청량신호소에서 강릉차량기지 입출고선과 안전측선이 분기되는 '21A호 선로전환기'에 장애가 난 것을 확인했다.

이후 초기 대응팀이 현장에 출동해 21A호 선로전환기를 확인했는데, 이상하게도 장애 상태에서도 청량신호소의 출발신호기는 '정상'으로 현시됐다.

초기 대응팀은 관제와 협의해 서울로 가는 제806 KTX열차(사고 열차)를 먼저 출발시키고, 이후 다른 열차를 차량기지에서 출고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KTX열차는 본선과 강릉차량기지 분기부에 있는 21B호 선로전환기를 지나다가 탈선했다.

"21A-21B 선로전환기 결선, 뒤바꿔 시공...연동검사서 발견못해"

탈선 현장 21B호 선로전환기 상황도. / 자료=철도사고조사보고서(ARAIB/R 2019-7)
탈선 현장 21B호 선로전환기 상황도. / 자료=철도사고조사보고서(ARAIB/R 2019-7)

항공철도사고위원회 조사결과, 사고 열차의 선두 동력차의 첫번째 대차는 서울방향으로 진행했는데, 두번째 대차는 강릉차량기지 방향으로 가면서 가장 먼저 탈선했었다. 

사고가 발생한 원인은 한마디로 '인재(人災)'였다. 21A호 선로전환기가 '장애'로 표시됐지만, 실제로 현장에선 사고열차가 진입한 21B호 선로전환기에서 '불일치 장애'가 발생했었다.  

21B 선로전환기에서 열차가 서울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분기기를 정확하게 움직여줘야 하는데, 제대로 동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호기가 '진행'으로 켜져 있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이유는 신호기계실 분선반에서 21A호와 21B호 선로전환기의 배선을 반대로 시공했기 때문이었다. 최초 설계도에 배선 방향이 다르게 돼 있었다고 한다. 이후 감리과정에서 이를 바로잡아 설계도를 수정했는데, 철도공단 작업자가 수정되지 않은 설계대로 선을 연결해버렸다.

이후 '연동검사'도 소홀히 해 잘못 시공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개통 후 1년의 시간 동안 유지관리를 하면서도 수차례 선로전환기 오류가 발생했었는데, 배선을 반대로 시공한 것을 발견하진 못했다. 시공부터 시험, 유지관리까지 총체적으로 부실했음이 낱낱이 드러났다.

사고 전ㆍ후 신호기계실 분선반 단자대 사진. / 자료=철도사고조사보고서(ARAIB/R 2019-7)
사고 전ㆍ후 신호기계실 분선반 단자대 사진. / 자료=철도사고조사보고서(ARAIB/R 2019-7)

이와 비슷한 사건이 지난 2022년 7월에도 있었다. 

장항선 신례원역 구내 선로전환기 배선을 잘못 연결했었는데, 로컬관제실에서 진로를 취급하고 현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선로전환기 방향을 정상이라고 보고해 '오결선'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장항선은 단선 구간으로, 역에서 상ㆍ하행 열차가 대피하게 된다. 당시 열차 교행을 위해 익산행 하행열차를 대피선(7번선)으로 진입시켰는데, 용산으로 가는 상행열차가 오진로 진행신호를 받고, 같은 대피선으로 진입해버렸다.

다행히 충돌 전 기관사가 먼저 제동을 걸어 열차를 가까스로 멈춰 세웠다. 이 사건도 2018년 강릉선 KTX 탈선사고의 사례처럼 시공부터 시험까지의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었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선로전환기 장애는 열차 충돌이나 탈선 등 대형 철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시공-검사(시험)-유지보수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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