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와 관련된 비사를 꺼내는 <2번 출구> 연재가 진행됩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철도와 관련된 과거와 현재의 비사를 통해 미래의 철도 정책 등에서 배울 점 또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이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디젤동차는 퇴역했고, 대책은 없었다. 대책이 없었던 책임은 지역주민들이 떠안고 있다.  / 박장식 객원기자
디젤동차는 퇴역했고, 대책은 없었다. 대책이 없었던 책임은 지역주민들이 떠안고 있다.  / 박장식 객원기자

[철도경제신문=박장식 객원기자] '퇴역'에는 새로운 열차의 등장이 함께한다. 1960년대 증기기관차가 퇴역할 적에는 디젤기관차가 한국 철도의 주역이 되었고, '새마을호 동차'가 퇴역할 때는 'ITX-새마을'이라는 최신형 열차가 등장했다.

그런데 디젤동차의 퇴역은 이상하다. 새로운 열차는커녕 대체 열차도 없다. 물론 몇몇 열차가 누리로나 객차형 무궁화호로 대체되기는 했지만, 디젤동차만이 오갈 수 있는 역에는 그 어떤 열차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전철화가 되어있지 않으며, 기관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최소한의 설비가 종착역에 없는 곳이 국내엔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당장 세 곳의 구간에서 디젤동차의 퇴역과 함께 열차의 운행 자체가 멈춰버렸다. 영덕에서 서울로, 대구로 나가는 큰 역할을 했던 영덕-포항 간 동해선과 철원과 연천 사이 경원선 구간이 그렇고, 특히 16년의 헤리티지를 안고 달렸던 '1호 관광열차', 바다열차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회차 시설 없는 곳 세군데..." 대책도 없이 사라진 열차

바다열차가 오가던 삼척선의 삼척해변역, 디젤동차 무궁화호가 오가던 동해선의 종점 영덕역, 그리고 전철 공사가 끝나도 열차가 올 기약이 없는 경원선의 마지막 역인 백마고지역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이른바 '회차 시설'과 '전차선'의 부재다.

회차 시설은 현재 비전철 구간의 종점에 필수 불가결한 시설이다. 디젤동차가 퇴역하면서 비전철 구간에는 디젤기관차가 견인하는 객차만이 여객열차로 투입될 수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전철 구간의 종착역에는 디젤기관차가 차량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전차대나, 기관차가 객차를 끄는 방향이라도 바꿀 수 있는 최소한의 유치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

삼척해변역은 기존 삼척선의 종점인 삼척역이 동해선 공사로 인해 폐쇄되었고, 영덕역 역시 동해선이 울진, 삼척 방향으로 연장할 예정이기에 회차 시설이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두 구간 역시 전차선이 현재 개설되고 있다. 그나마 두 역은 '이유가 있는 부재'인 셈이다.

하지만 백마고지역은 처음부터 디젤동차만이 운행할 것을 가정했다. 특히 민통선 이북으로의 연장을 대비한다는 이유로 회차를 위한 시설과 전차선마저 없이 개통했다. 회차 시설이 없는 종착역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회차 시설의 부재가 단기간 내에 해소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디젤동차가 내구연한이 끝나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없었다.

결국 이유를 막론하고 기존 디젤동차를 대체할 비전철 구간에서 회차 시설이 필요 없이 차량의 운행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철도 차량이 있어야 했다. 그 열차가 배터리를 사용하는 차량이 되었건, 속칭 '하이브리드 동차'가 되었건, 아니면 이제 막 개발한 수소 동차가 되었건 무어라도 넣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철도 운영 책임 망각했나?...덩그러니 빈 선로

선로 한 가닥짜리 간이역에서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도, '14면짜리' 거대 역에서 이용하는 승객도 같은 철도 승객임을 주지해야 한다.  / 박장식 객원기자
선로 한 가닥짜리 간이역에서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도, '14면짜리' 거대 역에서 이용하는 승객도 같은 철도 승객임을 주지해야 한다.  / 박장식 객원기자

일단 바다열차의 '은퇴' 과정부터가 철도 운영사가 취할 액션이라기에 믿기 어려웠다. 바다열차는 기존 디젤동차를 개조한 열차였다. 그렇다면 디젤동차의 퇴역 시기에 새로운 열차가 이미 도입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디젤동차를 대체할 '후계자'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부분은 철도 운영사가 새로운 열차의 투입 비용만큼 부담하는 것이 옳았다.

최소한 열차의 개조 비용만큼을 바다열차가 운행하는 지자체에 분담하는 등의 '당근'이 있어야 지자체 역시 따라올 수 있었을 테지만, 바다열차는 원래 지자체에 열차 개조 비용만을 분담시켰던 데뷔 때와는 달리 140억 원의 열차 신조 비용을 지자체와 절반씩 떼어 내자는 제안을 했으니 받아들여졌을 리 만무하다.

백마고지-연천 간 경원선은 또 어땠는가. 그나마 영덕과 포항을 잇는 동해선 구간은 한국철도공사와 영덕군이 미리 '1년간 운행이 중단된다'며 대책 마련을 한 끝에 대체버스가 운행하면서 열차 이용객들이 한시름을 덜게 되었다.

하지만 경원선에서는 '추태'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연천역까지의 1호선 전철 개통에 앞서 주민들에게 '디젤동차 운행이 어렵게 되었다'며 전철 개통과 동시에 대행 버스마저 폐지하려는 악수를 뒀기 때문이다. 연천역 이북의 신망리역, 백마고지역, 신탄리역 등에서는 기껏 대행 버스를 이용했더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결국 철원군 등에서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대행 버스를 긴급하게 운행하고, 시내버스 노선을 한 달 뒤에야 연장하는 등, 철도 노선을 '열차가 없다'라는 이유로 열차도, 대체 교통수단도 없이 내버려 두는 철도 운영 기관으로써의 책임을 망각한 모습이 벌어졌다.

'종운 행사'가 아니라 대책 마련했어야..."이번은 정말 추했다"

철도 운영사의 책임은 철도 노선이 최대한 운행될 수 있게끔 하는 데 있다. 최소한 그 노선이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절차를 거쳐 폐선하거나 운행을 중단하는 것이 철도 운영사로써의 책임이다. 최소한 버스회사나 '관광 모노레일' 운영사도 이 책임을 지킨다.

하지만 디젤동차의 종운을 앞두고 취했던 행동은 그런 철도 운영사가 가져야 할 책임을 망각한 모습이었다. 특히, 철원군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서울로 저렴하게 나갈 수 있던 발이자 관광의 통로이기도 했던 통근열차가 사라진 뒤 불편한 대행 버스가 운행하는 것을 4년간 버텼더니, 그 값을 운행 계획이 없다는 '뒤통수'로 맞았으니 분노할 법도 했다.

디젤동차의 종운을 앞두고 한국철도공사에서는 동호인의 '종운 행사'를 후원하는가 하면 바다열차의 마지막을 알리는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다 좋다. 하지만 그 에너지의 10분의 1만이라도 기존의 열차가 대안 없이 사라져 불편을 겪을 주민들, 관광 수단이 사라지는 지자체에 쏟았더라면 철원군에서의 운행 중단 사태는 없었을 테다.

KTX 고객만 철도 고객이 아니다. 만 원짜리 관광열차를 타고 바깥 풍경을 즐기는 관광객도, 천 원짜리 통근열차를 타고 장에 나서는 지역 주민도 철도 고객이다. '풀뿌리 열차'에서 이런 일이 난다면, 언젠간 KTX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테다. 정부와 공기업의 자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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